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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호공 휘 함 유사(月湖公 諱 涵 遺事)
작 성 자 운영자 작 성 일 2009-02-15 18:49:16

 월호공 휘 함 유사(月湖公 諱 涵 遺事)

공(公)의 휘(諱)는 함(涵)이요 호는 월호(月湖)이고 관은 산원동정 좌우위상장군(散員同正 左右衛上將軍)이시다.

공은 문하시중인 휘(諱) 무종(茂宗 : 시호는 文忠公)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친을 따라 학문(學文)과 무예(武藝)를 연마하고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병마(兵馬)를 조련하고 좌우위상장군(左右衛上將軍)이 되었다.

이때에 몽고의 침범이 계속되었는데 몽고는 단기 3339년(서기 1006년) 테무진(鐵木眞)이 즉위하여 징기즈칸(成吉思汗)이라 칭하고 고려는 물론 중국의 송나라, 금(金)나라, 서하(西夏)나라와 멀리 터키국까지 원정하는 등 주변 국가 간의 전쟁(戰爭)이 그치지 않았고, 단기 3568년(서기 1235년) 고종 22년에는 몽고 태종의 군사가 침략하였고, 다시 단기 3579년(서기 1246년) 고종 33년 몽고의 정종(定宗)이 즉위한 이후에는 아모간(阿母侃)이 군사를 이끌고 침입하였으며, 단기 3584년(서기 1251년) 고종38년에는 몽고의 차라다이(車羅大)장군이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여, 고려 전국은 이곳저곳에서 몽고군과 격전이 벌어졌다.

좌우위상장군 휘 함(涵)공은 이들 몽고 침략군과 단기 3587년(서기 1254년) 고종 41년에 차라다이막장(車羅大幕將)인 아모간(阿母侃)장군의 일만 대군을 맞아 진위(振威)에서 일천여 군졸을 이끌고 용전(勇戰)하였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순절(殉節)하시니 몽고군은 무차별 살상을 자행(恣行)하여 우리 소씨(蘇氏)는 물론 전국토가 극심한 피해를 보게 되었고, 아우 환(渙)은 이 몽고의 난을 피하여 진강(鎭江 : 江華)로 이거하였다.

월호공(月湖公)은 진주강씨(晉州姜氏)와 혼인하여 4형제를 두셨는데, 장남 희철(希哲)은 문과(文科)로 급제하여 의정대부 금오위상장군(議政大夫 金吾衛上將軍)에 임명되었고, 단기 3592년(서기 1259년) 고종46년에 조정(朝廷)은 월호공(月湖公)의 충절에 보상하여 공의 격전지였던 진위여좌동(振威如左洞), 소골전장(牛洞田庄)을 하사(下賜)하여 배수 보존(拜受 保存)하였고, 차남 석철(錫哲)은 진사(進士)로 용천(龍川)에 분가하여 용천파조가 되었으며, 삼남 문철(文哲)은 문과(文科)로 급제하여 금자광록대부 정당문학(金紫光祿大夫 政堂文學)으로 국학대성전(國學大成殿) 건립 등 정사에 공이 많아 충남 아산(忠南 牙山)과 경기 삼귀일원(京畿 三貴一圓)의 전장(田庄)을 하사받고 수원(水原)으로 이사하여 수원파조(水原派祖)가 되었고, 사남 무철(武哲)은 무과(武科)에 올라 청주(淸州)로 이사하였다.

손자 정(靖)은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단기 3649년(서기 1316년) 구장지(九將志)를 찬(撰)하였고 구인지(九印志)를 재발간하였으며 단기 3653년(서기 1320년) 충숙왕 7년 경신에 부소보(扶蘇譜) 중간(重刊) 시에 도유사(都有司)가 되어 서문을 지었다. 이후 계속하여 판서(判書)를 비롯하여 부사(府使) 참의(參議) 장군(將軍)과 충신(忠臣) 효자(孝子) 효부(孝婦)가 많이 배출되었다.